[취재후] 주꾸미가 열어준 보물 창고

유동엽 2014. 11. 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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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충남 태안의 안흥항 인근에서 주꾸미를 잡던 어부가 청자 접시를 하나 발견합니다. 그물에 소라 껍데기를 달아 놓으면 주꾸미가 그 안에 들어가 알을 낳은 다음, 입구를 자갈로 막아 놓는데 그물을 건져보니 청자 접시로 입구를 막고 있는 주꾸미가 있었던 겁니다. 고려청자 등 2만 5천여 점이 발굴된 이른바 '태안선'의 존재는 이렇게 주꾸미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위에 보시는 사진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나중에 찍은 사진입니다. 아쉽지만, 보물선을 발견하게 해준 그 주꾸미는 청자와 알을 뺏긴 채 공판장으로 팔려나가 사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사진2. (왼쪽부터) 청자 퇴화문 두꺼비형 벼루(보물 제1782호),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보물 1783호),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보물 1784호)>

두 달 뒤, '태안선' 발견 장소에서 3km쯤 떨어진 섬, 마도 인근에서도 어부가 청자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들어옵니다. 주꾸미 그물은 아니었지만, 청자 26점이 한꺼번에 그물에 올라온 겁니다. 문화재청의 발굴 조사가 시작됐고, 2009년부터 고려 시대의 침몰선이 잇따라 3척이나 확인돼 차례로 '마도 1·2·3 호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여기서 발굴된 청자 매병 2점은, 앞서 태안선에서 출토된 두꺼비 모양 벼루와 함께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됐습니다.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마도 인근 해역은 물살이 아주 빠른 곳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명량해전으로 유명한 울돌목 못지않은 곳이라면서 '관장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호남지방에서 생산된 쌀이나 도자기 등을 싣고, 지금의 서울이나 개성으로 향하던 물자 운반선들이 반드시 지나야하는 길목이었는데 빠른 물살 탓에 침몰선이 많았습니다. 이런 침몰선을 찾아 장기적인 조사를 하고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발굴팀은 지난 9월, 마도 인근에서 조선백자 다발을 발견합니다. 이제까지 발굴된 적이 없는 조선 시대 침몰선을 찾기 위해, 발굴팀은 해저의 펄을 파내기 시작했고 2미터 아래에서 선체 일부를 확인했습니다. 선체 내부에서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분청사기 2점이 발굴돼, 마도에서 네 번째로 발견된 이 '마도 4호선'은 최초의 조선 시대 침몰선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사진3. '마도 4호선' 수중 촬영 화면>

<사진4. '마도 4호선' 에서 발견된 분청사기> <사진5. '마도 4호선' 인근에서 발견된 백자>

'마도 4호선' 인근에서는 19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백자 백여 점도 한꺼번에 발굴됐습니다. 함께 발굴된 분청사기와는 대략 300~400년의 시차가 있는 유물이기 때문에 인근에 최소 2척 이상의 조선 시대 침몰선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펄 속에 묻혀 있는 '마도 4호선'은 수온이 높아지는 내년 4월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될 예정인데, 수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선조들의 이야기가 담긴 유물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또, '마도 5호선·6호선' 소식도 머지않아 들려올 것입니다.

한때 '주꾸미 공덕비'를 세우자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태안 주꾸미는 '바닷속 보물창고'를 열어 준 '1등 공신'입니다. 그 주꾸미를 잡은 어부는 어찌 됐을까요? 관련 법에 따라 주꾸미가 물고 있던 접시에 대한 보상금과 '태안선' 발견에 대한 포상금을 받았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은 뒤, 바닷가에서나 집 주변에서 오래된 유물로 보이는 물건을 발견한다면 담당 지방자치단체에 연락하시면 됩니다. 결과에 따라 꽤 많은 보상금과 포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관청의 허가 없이 바닷속이나 땅속을 발굴하시면 도리어 관련 법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문화재 발견은 우연과 행운의 영역에만 놔두셔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청자를 물어다 준 건 '쭈꾸미'가 아니라 '주꾸미'입니다. [쭈꾸미]로 읽지 않으면 왠지 맛이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지만 발음도 [주꾸미]로 해야 합니다. '짜장면'처럼 복수 표준어가 되기 전까지, 보물창고를 열어 준 건 '주꾸미'입니다.

☞바로가기 [뉴스9] 태안 앞바다서 '조선시대 추정 침몰선' 최초 발견

유동엽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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